20250326 [잃어버린 두 아들 이야기, 누가복음 15장 11~32절] 양승언 목사
잃어버린 두 아들 이야기
3월 26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누가복음 15장 11~32절
작은 아들의 방황과 돌이킴 11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아버지의 사랑 넘치는 영접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큰 아들의 분개와 반발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의 설명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묵상하기
1.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찾아와 유산 분배를 요구했다. 아버지가 유산을 분배해 주자 그는 어떻게 행했는가? 그 결과는 어땠는가? (11~19절)
2.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어떻게 그를 맞이했는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20~24절)
3. 둘째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무엇을 느끼는가?
4. 지금 당신에게는 둘째 아들과 맏아들과 같은 모습은 없는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정직히 돌아보라.
길잡이
오늘 본문은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찾아와 유산을 분배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유산은 죽은 후에 분배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둘째 아들의 요구는 매우 무례한 것으로 가족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아버지가 둘째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유산을 물려받은 둘째 아들은 먼 나라로 떠나 허랑방탕하며 재산을 낭비했다. 게다가 그가 머무는 나라에 큰 흉년까지 들어 더욱 궁핍해 졌다. 결국 그는 돼지 치는 일을 했는데, 유대인들이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긴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절박하고 비참한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심지어 돼지의 먹이인 주엄 열매를 먹고자 했으나, 이조차 주는 자가 없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과 허무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궁핍함과 처량함을 깨달은 그는 스스로 돌이켰다. 우선 그는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의 풍요로움을 회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범했음을 진심으로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했다. 믿음은 죄에 대한 회개와 더불어 과거의 삶에서 돌아서는 행동이 필요하다(11~19절).
아직 집이 멀리 보일 때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매일 동네 밖에 나가 아들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지 모른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다. 이러한 행동은 신분의 회복을 상징하는데, 둘째 아들은 자신을 종으로 여겨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로서 그를 받아준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아들을 버린 적이 없으며, 이것이 바로 죄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도록 했다. 죽었다가 살아온 아들을 얻은 기쁨이 아버지에게 가득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또다시 구원 받은 한 영혼으로 인해 함께 기뻐하자고 청하고 있는 것이다(20~24절).
맏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심지어 그는 잔치가 열린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을 동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의 잘못에 대해 용납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불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에는 어떤 재산도 주시지 않았다고 항의한다. 자신은 수고에 비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예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관심은 관계와 동행에 있었지만 맏아들의 관심은 아버지의 재산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집안의 탕자였던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는 기쁨보다는 다른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죄인들과 함께 한다고 비판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맏아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정직히 돌아보길 원했던 것이다(25~32절).
혹시 우리에게는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과 같은 모습은 없는가? 하나님 없는 삶을 갈망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에 어떤 관심도 없이 세상 일에만 관심 갖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정직히 점검해 보라.
기도
하나님 없는 삶의 비참함을 깨닫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소서.
삶속으로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 1층에는 "병희"라는 이름의 화가가 경영하는 화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3층에 새롭게 이사 온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늘 아기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런데 그녀가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양쪽 눈이 정상인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늘 한쪽 눈을 꼭 감고 마치 시각 장애인처럼 더듬으며 걷는 것이었다. 그래서 볼 때마다 참 이상한 습관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이 여인이 비를 피하기 위해 화실에 들어와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인이 업고 있는 아기의 오른쪽 눈이 흉하게 감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태어난 직후 질병으로 인해 실명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여인이 사진 한 장을 꺼내 놓더니 이런 부탁을 했다. "이 아가의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줄 수 있으세요?" 가능하다고 했더니 이렇게 물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우리 아가의 오른쪽 눈을 정상으로 예쁘게 그려줄 수 있으세요?" 그래서 "그럴 수 있지요."라고 답했다.
화가는 그날 하루 종일 온 정성을 다해 그 아기의 인물화를 그렸다. 물론 오른쪽 눈을 그려 넣을 때는 특별히 긴장하며 진지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여인은 매우 좋아하며 그림을 가져 가더니, 얼마 후 자기 집으로 화가를 초청했다. 화가가 3층 집에 방문했을 때, 좁은 거실의 한쪽 벽에는 자기가 그린 아기 그림이 소중하게 걸려 있었다. 여인은 그 그림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화가 선생님, 저는 제 아가에게 꼭 이런 눈을 주고 싶어요. 아가가 조금 더 크면 제 눈을 이식해 줄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아가도 예쁜 눈을 가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한쪽 눈으로 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한쪽 눈으로 밥 먹고, 한쪽 눈으로 계단을 내려 하고, 한쪽 눈으로 길을 걷지요. 그래도 저는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 순간 비로서 화가는 그 여인이 그 동안 한쪽 눈을 감고 다닌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기의 초상화에 눈을 그려달라고 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한쪽 눈이 아팠다는 기억조차 남겨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내어 주셨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씻어 주길 원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알아야 한다. 그 사랑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Td5pQzHF4u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