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9 [서기관과 과부, 누가복음 20장 41절~21장 4절] 양승언 목사

서기관과 과부

4월 9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누가복음 20장 41절 ~ 21장 4절

그리스도 논쟁 41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서기관의 외식 45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과부의 헌금 1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묵상하기

1. 예수님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다윗이 지은 시편을 가지고 설명하셨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41~44절)

2.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모습에 대해 책망하신 후, 과부의 믿음에 대해 칭찬하셨다. 서기관을 책망하시고 반대로 과부의 믿음을 칭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45~4절)

3. 가난한 과부의 믿음을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당신도 과부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길잡이

종교지도자들의 물음에 답하신 예수님은 먼저 그들에게 질문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순히 인간 후손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편을 인용하여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메시아는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임을 설명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누린 영광을 회복해 줄 인간 통치자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시아는 단순히 인간 이상의 신적인 존재임을 다윗의 예를 통해 보여주길 원하신 것이다.

(1)다윗은 주라고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첫 번째 주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야훼”다. (2)두 번째 “내 주”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헬라어로 퀴리오스)이며, 다윗이 메시아를 자신의 주로 지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내 우편에 앉으리라”는 표현은 메시아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위의 자리에 앉을 것을 보여준다. (4)”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는 죄와 악에 대한 최후 승리를 의미한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를 “주”라고 부른다. 결국 메시아는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구약에서 이미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고발하던 신성모독이 아님을 보여주신 것이다(41~44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당시 서기관들의 모습을 경고하셨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적인 율법학자들을 지칭한다. 서기관들은 종교적인 직무를 감당할 때 희고 긴 옷을 입었는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자 시장에서도 긴 옷을 입고 다녔다. 또한 회당과 잔치 등 사람들이 모일 때 특별 대우를 받기를 좋아했다. 과부의 간사를 삼켰다는 것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하여 개인적으로 재물을 축적했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장황하게 기도하곤 했다. 따라서 그들이 받는 심판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그들은 선생으로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잘못된 신앙와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45~47절).

예수님이 성전에 계실 때 사람들이 헌금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 헌금함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헌금을 하면 그 소리가 들렸다. 따라서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구분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때 어느 과부가 와서 매우 적은 양인 두 렙돈을 헌금궤에 떨어뜨렸다. 두 렙돈은 가장 작은 단위의 화페로, 하루치 평균 임금의 1/100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이 돈을 낙헌제에 드리는 궤에 넣은 것은 의무적으로 내는 세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말씀하셨다.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많은 헌금을 드렸지만, 그들의 풍족함에 비하면 적은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부족한 가운데 전부를 바쳤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드렸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예물을 드렸던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그녀가 드린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신뢰를 보시고 높게 평가한 것이다(1~4절).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당신도 과부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 헌신된 삶을 살게 하소서.


삶속으로

청년부 때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고시원에서 총무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덕분에 고시원비를 아낄 수 있었다.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시원비를 깎아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절약한 비용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보고 도전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가난한 형편 중에도 월급을 타면 제일 먼저 헌금부터 따로 빼 놓고, 토요일이면 헌금할 돈을 다림질 하시곤 했다. 과거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많이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지 정직히 점검하며, 과부가 가졌던 믿음과 헌신이 우리에게도 있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CTA1iWkyY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