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7 [그들이 구하는 대로, 누가복음 23장 1~25절] 양승언 목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4월 17일(목)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누가복음 23장 1~25절

빌라도의 1차 심문 1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3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4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5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6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7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 앞에 서신 예수님 8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10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11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2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빌라도의 2차 신문과 무죄 선고 13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없음)

무리의 사형 요구 18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의 사형 언도 22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묵상하기

1. 유대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소했다. 이들의 고소에 빌라도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특히 예수님을 누구에게 보냈는가? (1~12절)

2. 헤롯의 의견을 청취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했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 결과 빌라도는 무엇을 선택하였는가? (13~25절)

3.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도 십자가의 처형을 언도하는 빌라도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우리도 빌라도와 같은 모습은 없는가? 세상의 욕심과 자랑, 자기 연민과 자기애에 빠져, 예수님을 등지고 멀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십자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라.


길잡이

유대 공의회는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지만, 로마법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 또한 자신들이 직접 죽이면 유대 백성들의 원망을 들을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무리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 신성모독이라는 신학적 주제로 예수님을 고소했지만, 사형을 확정하기 위해선 정치적 죄목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백성들을 선동하고 왕을 자처한다며 예수님을 반역죄로 고발하고자 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답하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셨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왕이나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었고,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자 무리들은 더욱 강하게 예수님이 온 유대와 갈릴리에서 폭동을 일으키고자 했다고 외쳤다(1~7절).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들은 빌라도는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에게 보냈다. 당시는 유월절 명절 기간이라 헤롯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기에, 예수님의 재판을 그에게 넘길 계산이었다.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 심히 기뻐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에게 순회공연단 이상의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었다. 헤롯의 의도를 아신 예수님은 그가 던진 질문들에 답하지 않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고소만이 난무했다.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자, 화가 난 헤롯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으로 분을 풀었다. 헤롯은 조롱의 의미로 예수님에게 빛난 옷을 입힌 다음, 예수님을 석방하지도, 죄에 대해 평결하지도 않고, 빌라도에게 돌려 보냈다. 빌라도와 헤롯은 그동안 긴장관계에 있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회복되었는데, 그 이유는 헤롯의 권위를 인정해 빌라도가 예수님의 재판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다(8~12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고소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죄를 발견하지 못했음을 알렸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헤롯의 결론을 통해 자신의 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롯은 예수님을 조롱하기는 했지만, 사형에 언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매질하여 풀어 주길 원했다. 그는 매질을 통해 군중의 흥분을 진정시키고 예수님에게 경고를 줄 계획이었다(13~17절).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빌라도는 백성들이 요구하는 죄수를 석방해주는 관례를 만들어 놓았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빌라도는 백성들이 요구하는 한 사람을 석방해 주어야 했고, 무리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질렀다. 바라바는 예루살렘에서 민란과 살인을 범한 죄목으로 갇혀 있었는데,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살인자마저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했으나 무리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다. 빌라도는 왜 이렇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세 번째로 사형에 처할 죄목을 찾을 수 없기에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리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처형을 요구했고, 결국 빌라도는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처형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죄인인 바라바는 석방되고 무죄하신 예수님이 대신 처형을 당하게 되었고, 이는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18~25절).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서도 사형을 언도하게 된다. 우리도 빌라도와 같은 모습은 없는가? 세상의 욕심과 자랑, 자기 연민과 자기애에 빠져, 예수님을 등지고 멀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십자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라.


기도

빌라도와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없는지 점검해 보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가게 하소서.


삶속으로

존 스토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등을 돌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유다처럼 탐욕으로 인해, 대제사장들처럼 시기로 인해, 빌라도처럼 우리의 야망을 위해 예수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라고 오래된 흑인영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렇다.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라고 답해야 한다. 단순히 구경꾼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음모를 품고 계획을 세우고 배반하고 흥정하고 넘겨 주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모든 일에 참여한 유죄의 가담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손을 씻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빌라도의 시도가 헛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시도도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우리를 위한 어떤 것으로 보는 것에 앞서 우리에 의하여 벌어진 일로 보아야만 한다.” 존 스토트의 말처럼, 십자가가 우리를 위한 일이기 전에 우리에 의해 벌어진 일임을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3Vuxc_4s4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