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1 [심판과 축복 사이에서, 역대상 13장 1~14절] 양승언 목사
심판과 축복 사이에서
6월 11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역대상 13장 1~14절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려는 계획 1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바르지 못한 절차 5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6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7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웃사의 죽음 9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하나님의 궤 12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묵상하기
1.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은 어떤 일을 진행할 계획을 세웠는가? (1~4절)
2.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5~14절)
3. 하나님의 법궤를 수레에 실어 옮기다가 웃사가 죽음을 당하는 사건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비록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선한 목적을 가졌지만 잘못된 과정으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은 없는가? 혹시라도 우리 안에 바로잡아야 할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길잡이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 위해 이스라엘의 여러 지도자들과 의논했다. 다윗은 먼저 천부장과 백부장, 그 밖의 모든 지휘관들의 동의를 얻었고,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자신의 계획을 발표하고 회중들은 다윗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역대기는 온 이스라엘이 동참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윗에게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오는 일은 물리적인 프로젝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영적인 프로젝트였다. 사울은 통치기간 내내 법궤를 방치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죄를 범한 것이었다. 다윗이 방치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삶의 상징으로 간주한다(1~4절).
온 회중의 지지를 얻은 다윗은 이집트의 시홀에서부터 하맛 어귀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았다. 법궤가 있는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다윗과 백성들은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꺼내 새 수레에 실었다. 법궤는 블레셋에서 돌아온 이후로 이곳에서 수십 년을 보냈다. 웃사와 아히오가 법궤를 실은 수레를 몰았고,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이들의 찬양하며 춤추는 모습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 계셨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5~8절).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 법궤가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문제가 생겼다. 웃사가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어서 떨어질 것 같은 궤를 붙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것이다. 웃사의 죽음울 기념하기 위해서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불렀다. 그럼 웃사가 저지른 죄는 무엇인가? 첫째 어떤 경우에도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거룩한 물건을 만졌기 때문이었다. 옛적에 호기심 때문에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다 벧세메스 사람 70명이 죽은 일이 있었다. 둘째, 비록 반사적 행동으로 법궤를 잡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의 죄를 저질렀다. 법궤는 하나님이 스스로 알아서 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긴 뒤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는 지를 생각해보면 이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9~11절).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보지 않았고, 두려움에 빠졌다. 다윗은 하나님이 법궤를 옮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아 이런 사고가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법궤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모세의 율법에는 법궤가 이동할 때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레위 지파에 속한 고핫 자손들만이 그것을 장대로 메고 옮기라고 했다. 그런데 다윗은 수레에 싣고 옮겼는데,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옮기는 방법이었다. 두려움에 빠진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남겨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 임마누엘의 은혜가 넘쳐났던 것이다(12~14절).
비록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선한 목적을 가졌지만 잘못된 과정으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은 없는가? 혹시라도 우리 안에 바로잡아야 할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기도
늘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자녀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래서 늘 아이를 위해 앞장서서 도와주고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아이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예요.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요.”라고 항상 말했다. 하지만 훗날 자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예요. 엄마 뜻대로 되길 바랬던 것이예요.” 자녀를 너무나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사랑이 자녀에게는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하임 기놋이 처음 사용한 헬리콥터 부모라는 용어가 있다.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모든 일을 대신해 주거나 개입하려는 양육태도를 의미한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방법을 취함으로 오히려 사랑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바른 목적 뿐만 아니라 바른 방법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GL5TJhOlwz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