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0 [새 노래로 찬양할지어다, 시편 149편 1~9절] 양승언 목사
새 노래로 찬양할지어다
12월 30일(화)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시편 149편 1~9절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1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3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4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5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입의 찬양과 손의 칼 6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7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묵상하기
1.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시인은 어떻게, 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는가? (1~5절)
2.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의 모습을 노래한다. 성도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 (6~9절)
3.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우리는 늘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늘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찬양할 줄 아는 사람인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길잡이
시인은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고 보호하고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의 백성들을 괴롭힌 나라와 지도자들을 벌하시고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1~5절)
시인은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령하는데, 새 노래는 새로운 마음과 자세를 의미한다. 또한 새노래는 하나님인 만드실 새 세상에 대한 종말론적 비전이 담겨 있다. 시인은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하라고 말하는데, 찬양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임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그들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진정한 왕이시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에 그분의 백성은 즐거워하고 찬양해야 한다.
주의 백성들은 목소리로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소고와 수금 등 악기를 동원해서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몸과 악기들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악기로 찬양하고 춤을 추는 것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가 임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겸손한 자들을 구원하셔서 아름답게 하신다. 겸손한 자들은 세상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은 면류관을 씌워 영화롭게 하신다는 뜻한다. 침상에서 찬양하라는 것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찬양하라는 뜻이지만, 개인적인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 입의 찬양과 손의 칼(6~9절)
성도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으며 그들의 손은 양날 칼을 쥐고 있다. 시인이 노래하는 성도의 모습은 열심히 찬양하며 열심히 전쟁하는(일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찬양하며 칼을 든 백성을 사용하여 열방을 응징하실 것이다. 권세자들에게 짓밟히고 억압 당하던 겸손한 자들이 세상을 호령하던 권세자들을 결박하는 것은 강력한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의 백성을 핍박했던 자들이 처형을 당하는 것을 성도들은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늘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찬양할 줄 아는 사람인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
내 안에 굳어진 마음과 익숙한 태도를 버리고 늘 처음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삶속으로
지난 가을 우리 교회를 섬기는 부교역자가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수를 받고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목사가 되었다는 무게감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처음 안수 받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때 느꼈던 감사와 감격, 소명과 책임감이 나에게 얼마나 남아 있는지 돌아보았다. 그런데 목사가 되어 20년이 넘다 보니 어느새 그 날의 감격이 내 안에 많이 사라져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자녀 양육도 마찬가지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처음 보던 때의 기쁨과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를 양육하다 보니, 현실에 치여 그 날의 감격을 잊고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아침이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QMRO_Zzxb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