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목숨을 내어 주는 사랑, 요한복음 10장 1~21절] 양승언 목사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3월 4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요한복음 10장 1~21절
목자와 강도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청중의 무지 6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양의 문이신 예수님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선한 목자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생명을 버리고 다시 얻은 권세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상반된 반응 19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묵상하기
1.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로, 믿는 자들을 양으로 비유하신다.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3~4절)
2. 예수님은 자신이 온 목적을 무엇이라고 밝히시는가? 도둑과 삯꾼의 모습과 대조하여 설명해 보라. (10~13절)
3.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당신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일상에서 어떻게 분별하며 따르고 있는가? 목자의 음성보다 당신에게 더 크게 들리는 세상의 소리는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과 선한 목자로 비유하며 당시의 거짓 종교 지도자들과 자신을 대조하여 설명하는 내용이다
• 목자와 강도(1~5절)
고대 중동에서는 밤이 되면 목자는 양들을 도적이나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로 모아 들였다. 여러 명의 목자가 한 우리를 공유하더라도, 목자가 와서 부르면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랐다. 그런데 우리의 문으로 당당히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자는 양들을 이용하려는 도적이자 강도이다. 반면, 참 목자는 문으로 들어가며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해 낸다. 참 신자들은 낯선 자(거짓 목자)의 음성을 알지 못하므로 그를 결코 쫓아가지 않고 도리어 도망한다.
• 청중의 무지(6절)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 양의 문이신 예수님(7~10절)
사람들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양의 문이라고 밝히셨다. 양들이 목자의 돌봄 아래 문을 통과하여 꼴을 얻듯이,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적인 구원과 자유, 생명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도적과 삯꾼(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하지만, 예수님은 양들에게 하늘의 영원하고 충만한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기 위해 오셨다.
• 선한 목자(11~16절)
예수님은 악한 목자들과 대조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 양들을 사랑하여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다. 반면 삯꾼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뿐 양을 진정으로 돌보지 않으므로, 위험(이리)이 닥치면 자기 생명을 건지기 위해 양을 버려두고 도망쳐 버린다. 예수님과 제자(양)들 사이의 깊은 앎과 신뢰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사이의 관계에 빗대어 제시될 만큼 친밀하고 온전한 것이다. 예수님은 현재 유대교의 우리 안에 있는 양들 뿐 아니라,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즉 이방인 신자들도 구원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셨다. 결국 모든 신자는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속하게 될 것인데, 이는 민족을 초월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연합을 보여준다
• 생명을 버리고 다시 얻은 권세(17~18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대적들에게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구원하려고 자발적으로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것이다. 또한 그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얻을 권세(부활)도 가지고 계시다. 예수님은 죽음과 그 이상의 일들을 주관할 권세를 가지셨으며, 이 모든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뜻)에 따른 것이다.
• 상반된 반응(19~21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불신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려 미쳤다고 이중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며, 귀신이 어떻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들은 9장에서 있었던 소경 치유의 기적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고,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당신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일상에서 어떻게 분별하며 따르고 있는가? 목자의 음성보다 당신에게 더 크게 들리는 세상의 소리는 무엇인가?
기도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명확히 분별하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푸른 초장으로 기쁘게 나아가는 양이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어느 칠순 노성도가 있는데, 이분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 "무거울수록 가벼워라"라고 표현한다. 이분은 어려서 집이 매우 가난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할머니 댁에 가서 살을 얻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머리에 가득 쌀을 지고 오는데, 무거운데 무겁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쌀을 퍼 넣어 주실 수록 오히려 더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왜일까? 돌아가서 배불리 먹을 생각을 하니까 무거운 것이 오히려 가볍게 느껴진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은혜가 있고, 우리에게 앞으로 주실 은혜를 생각하면 무겁지만 가볍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맹인은 바리새인들의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한다. 그가 받은 은혜가 컸기에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주실 은혜를 기대함으로 믿음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cHg0h1cCp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