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8 [두려움에서 환대로, 창세기 43장 16~34절] 양승언 목사

두려움에서 환대로

5월 18일(월)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창세기 43장 16~34절

두려워하는 형제들 16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청지기의 위로와 시므온의 석방 23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4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요셉의 문안과 눈물 26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27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28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29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기이한 배정과 특별한 대접 31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2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33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34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묵상하기

1. 요셉의 집으로 인도된 형제들은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청지기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8~23절)

2. 요셉은 베냐민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며, 형제들과 어떻게 함께 식사하는가? (29~34절)

3. 형제들이 두려워하던 자리가 오히려 평안과 잔치의 자리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

4.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신다. 당신은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은 자로서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이집트로 내려온 형제들이 요셉의 집으로 초대받으면서 겪게 되는 두려움과, 이어지는 극적인 만찬의 장면을 다루고 있다.

· 두려워하는 형제들(16~22절)

요셉은 베냐민과 함께 온 형제들을 특별하게 대접하기 위해 청지기에게 자기 집에서 만찬을 준비하게 한다. 그러나 요셉의 집으로 인도된 형제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지난번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을 빌미로 자신들을 노예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극도로 불안해한다. 이는 뒤가 깨끗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호의마저도 심판의 징조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청지기의 위로와 시므온의 석방(23~25절)

형제들이 관리인에게 지난번 돈과 새 돈을 모두 가져왔다고 정직하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자, 관리인은 "안심하라(문자적 의미로는 '너희에게 평안/샬롬이 있으라')"고 위로하며 갇혀 있던 시므온을 그들에게 돌려보내 준다. 진실하고 정당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요셉의 문안과 눈물(26~30절)

드디어 요셉이 집으로 들어오자, 형제들 모두가 예물을 드리며 땅에 엎드려 그에게 큰 절을 한다. 이는 자신들의 생사를 쥐고 있는 총리에게 예를 갖춘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과거 모든 형제가 자신에게 절할 것이라던 요셉의 꿈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다정하게 묻고, 자신의 친동생인 베냐민을 보며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라며 축복한다. 베냐민을 마주한 요셉은 돌아가신 어머니 라헬과 가족들에 대한 생각 등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급히 안방으로 자리를 피해 남몰래 한참을 운다. 통곡 후 그는 얼굴을 씻고 나와 다시 감정을 억제하며 만찬을 지시한다.

· 기이한 배정과 특별한 대접(31~34절)

식탁은 요셉의 상, 이집트 사람들의 상, 그리고 히브리 사람(형제들)의 상 등 세 군데로 나뉘어 차려졌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목축을 하는 이방인들을 야만인으로 여겨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매우 꺼렸기 때문이다. 이때 형제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요셉이 열한 명의 형제들을 정확하게 나이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하여 앉힌 것이다. 이집트의 총리가 자신들의 서열을 꿰뚫고 있는 기이한 상황에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본다.

또한 요셉은 자신의 상에서 음식을 내려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음식을 준다. 이는 친동생을 향한 특별한 사랑의 표현인 동시에, 요셉의 상에서 나온 음식이 훗날 이 형제들과 그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훌륭한 대접에 완전히 경계심이 풀린 형제들은 요셉과 함께 취하도록 즐겁게 마시게 되는데, 이는 요셉이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숨겨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시험하기 위해 그들의 긴장을 늦추도록 유도한 치밀한 과정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신다. 당신은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은 자로서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

불안해하는 제 영혼에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제 자격이 아닌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차려진 평강의 식탁에서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사회학적 이론에 따르면 현대인의 인간 관계는 호혜성에 기반한다. 호혜성이라는 누군가가 나에게 행한 대로 상응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즉 내가 해 준 만큼 받기를, 또 받은 만큼 되돌려 주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의 가장 중요한 논리는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다. 통계에 따르면, 현대인의 불안 지수 중 상당 부분은 '내가 한 만큼 돌려받지 못하거나, 잘못한 만큼 벌을 받을 것'이라는 강박에서 온다고 한다. 하지만 요셉의 식탁은 이 법칙을 깨뜨린다. 형들은 요셉에게 해를 입혔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보복하기 보다는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다.

이런 요셉의 식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식탁의 모형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가르친다. 죄인인 우리를, 자격 없는 우리를 받아 주셔서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자녀로, 가족으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알아야 한다.

코리 덴 붐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끌려가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심지어 수용소에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언니를 먼저 떠나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독일인들에게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역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독일의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데 그 자리에 수용소에서 자신을 괴롭했던 간수가 앉아 있었다. 그 때 저 사람이 제발 자신에게 와서 아는 척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용서할 마음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저 사람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용서했던 이유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받은 용서 때문이다.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가 컸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았는지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xL4DEhhuez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