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5 [지혜로운 건축가, 고린도전서 3:1~15] 양승언 목사

지혜로운 건축가

6월 5일(금)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고린도전서 3장 1~15절

육신에 속한 자들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하나님의 동역자들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집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묵상하기

1.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어떤 자들이라 부르며, 그 증거로 무엇을 제시하는가? 신앙의 성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4절)

2.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교회 안에서 사역자의 올바른 역할과 위치는 무엇인가? (5~9절)

3. 교회의 유일한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공적이 불로 시험 받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 오늘 나의 삶과 섬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미성숙 문제를 진단하고, 교회와 사역자의 올바른 정체성을 두 가지 비유(농업과 건축)로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각 사람의 공적이 불로 심판받는다는 종말론적 경고로 마무리한다.

· 육신에 속한 자들(1~4절)

바울은 2장에서 신령한 자와 육에 속한 자를 대조했다. 3장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로 육에 속한 자임을 직접 지적한다. 그 증거가 바로 시기와 분쟁이다. 신앙 연수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단단한 음식(밥)을 소화하지 못하고 젖을 먹어야 하는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것이다. 파당을 만들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하는 행태가 바로 영적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성숙한 신앙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삶의 변화, 곧 시기와 분쟁에서 사랑과 연합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 하나님의 동역자들(5~9절)

바울은 두 가지 비유로 사역자의 정체성을 정리한다. 첫째, 농업 비유다. 바울은 씨를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는 하나님과 비교할 때의 이야기다. 사역자는 각자 맡은 역할대로 충성하면 되고, 결실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둘째, 9절에서 정체성을 선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이며, 교인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다. 교회의 주인은 사역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집(10~15절)

바울은 이제 건축 비유로 전환한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터를 닦은 지혜로운 건축자다. 그런데 그 터는 단 하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어떤 다른 터도 가능하지 않다. 오늘날 교회가 복음 대신 프로그램, 건물, 인기 있는 사역자, 세상적 성공을 터로 삼으려 할 때, 이 말씀은 날카로운 경고가 된다. 교회의 모든 사역과 삶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터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 터 위에 무엇을 세우느냐의 문제다. 금·은·보석은 불에도 타지 않고 정련되어 더 빛난다. 나무·풀·짚은 불에 타 없어진다. 그 날, 즉 심판의 날에 각 사람의 공적이 불로 시험 받는다. 이것은 구원을 얻느냐 못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구원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다만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운 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공적이 불타도 자신은 구원을 받는다고 했지만, '불 가운데서 받은 것같이'라는 표현이 그 민망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공적이 불로 시험 받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 오늘 나의 삶과 섬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

장차 불의 시험 앞에 서게 될 날을 기억하며, 세상의 헛된 자랑인 나무와 짚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금과 보석 같은 순종의 공적을 쌓아가게 하소서.


삶속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작가이자 문학가인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현세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은 바로 다음 세상을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로마제국을 걸어서 회심시키려 했던 사도들, 중세시대를 건설한 위인들, 그리고 노예제도를 폐지한 영국의 복음주의자들 모두 이 땅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천국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현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력하게 된 것은 그들 대부분이 다음 세상에 관해 생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왜 삶을 살면서 삶의 의지와 기쁨을 잃어버리는가? 우리의 시선이 이 땅에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인생을 결산할 날에 맞추어질 때 우리는 오늘을 다르게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정산하실 날을 바라봄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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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7fFKx_nE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