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2 [방언의 한계와 예언의 유익, 고린도전서 14:1~19] 양승언 목사
방언의 한계와 예언의 유익
6월 22일(월)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고린도전서 14장 1~19절
방언보다 예언을 1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의 필요 6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공적 예배에서의 방언 사용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묵상하기
1.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며, 각각 누구를 향한 것이며 무엇을 세운다고 말하는가? (1~5절)
2. 바울은 악기와 나팔 소리의 비유를 들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하는가? (6~12절)
3. 바울이 “영으로 기도하고 또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다섯 마디 말이 낫다”는 말씀은 무엇을 강조하는가? (13~19절)
4. 당신의 신앙생활과 봉사, 말과 행동이 자신의 만족(자기의 덕)을 위한 것인지, 공동체(교회의 덕)를 세우는 것인지 돌아보라. 오늘 공감할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13장에서 강조한 사랑이라는 굳건한 기초 위에서,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열광했던 두 가지 영적 은사인 방언과 예언을 대조하며 공적인 예배에서 은사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단락이다. 바울이 영적 은사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바로 교회의 덕이다. 즉 “얼마나 신비로운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유익한가”에 있다.
· 방언보다 예언을(1~5절)
바울은 사랑을 추구하되 신령한 은사들,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방언은 그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 알아듣는 자가 없으며 오직 자기 자신의 덕만을 세우게 된다. 반면 예언은 사람들에게 분명한 언어로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위로)하는 역할을 하므로 전체 교회를 유익하게 한다. 방언이 통역 되어 교회를 세우는 데 쓰이지 않는 이상, 공적인 모임에서는 전체 교회를 격려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예언이 방언보다 더 크고 유익한 은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의 필요(6~12절)
바울은 피리나 거문고 같은 악기와 군대의 나팔 비유를 들어 언어의 명료함을 강조한다. 악기가 분명한 음색을 내지 않거나 나팔이 불분명한 소리를 내어 경고하지 못하면 아무도 전쟁을 준비할 수 없듯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지 않는 방언은 그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소리가 있어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에게 야만인(외국인)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그토록 사모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개인의 영적 과시가 아니라, 오직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촉구한다.
· 공적 예배에서의 방언 사용(13~19절)
공적인 예배에서 방언을 유익하게 사용하려면 반드시 통역이 필요하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영으로만 찬미하고 축복하면,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방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신자나 불신자)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결코 아멘이라고 동의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다른 사람은 전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이성, 지성)으로 기도하며"라고 선언하며, 영적인 열정 뿐만 아니라 지성을 동원하여 타인과 소통하는 예배를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 방언을 많이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지만(개인적인 기도의 차원), 공적인 교회 모임에서는 남을 가르치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알아듣게)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뜻 모를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단언하며 이 단락을 맺는다.
기도
제가 가진 은사와 말이 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한 이들이 알아듣고 함께 세워지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은 어느 날 교수직을 내려놓고 캐나다에 있는 중증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 섬기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의 희생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오히려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누릴 수 없었던 참된 행복과 기쁨을 장애인공동체에서 섬김의 삶을 살면서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사랑과 섬김을 위해서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은사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때 우리는 참된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oPsi5MGgp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