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5 [무너지는 영광, 세워지는 신앙, 이사야 17:1~14] 양승언 목사

무너지는 영광, 세워지는 신앙

8월 5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이사야 17장 1~14절 

다메섹과 에브라임의 멸망 1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2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3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들어 버린 야곱의 영광 4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5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6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 창조주를 바라봄 7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8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을 잊은 번영의 결말 9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10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 11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열방의 소동과 하나님의 심판 12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13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14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 


묵상하기

1. 다메섹과 에브라임에게는 어떤 심판이 선언되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남겨 두시는가? (1~6절) 

2. 그 날에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게 되며, 더 이상 무엇을 바라보지 않게 되는가? (7~8절) 

3. 심판의 근본 원인을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이방의 나무 가지를 심었기 때문"(9~10절)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며 마음 밭에 심고 있는 "이방의 나무 가지"는 무엇인가? 오늘 다시 바라보아야 할, "나를 지으신 이"는 누구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유다의 북쪽 인접 국가들인 시리아(다메섹)와 북왕국 이스라엘(에브라임)에 임할 심판과 그 원인, 그리고 열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다루고 있다.

· 다메섹과 에브라임의 멸망(1~3절)

역사적으로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는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했으나(사 7장), 하나님은 이 동맹이 결국 파멸에 이를 것임을 선포하신다.

(1)다메섹의 파멸: 한때 강성했던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은 더 이상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다.

(2)에브라임의 몰락: 북이스라엘의 요새와 나라의 주권 역시 사라질 것이며, 그들의 남은 영광은 사라진 아람의 영광과 같게 될 것입니다. 이는 주전 732년 앗수르에 의해 다메섹이 함락됨으로써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

· 시들어 버린 야곱의 영광(4~6절)

선지자는 이스라엘(야곱)의 영광이 어떻게 쇠락할지를 세 가지 비유로 설명한다.

(1)병든 몸: 평소 잘 먹어 살진 사람이 병이 들어 가죽만 남도록 쇠약해진 모습에 비유한다.

(2)추수 후의 들판: 온갖 곡식으로 풍성했던 들판이 수확 후 이삭 몇 개만 남은 허허벌판으로 변한 모습과 같다.

(3)감람나무의 열매: 나무를 흔들어 수확한 뒤,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겨우 두세 개의 열매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다.

(4)남은 자의 소망: 이 비유들은 심판의 혹독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극소수지만 하나님의 보전으로 살아남는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암시한다.

· 다시 창조주를 바라봄(7~8절)

심판의 날에 일어날 긍정적인 영적 변화를 묘사한다.

(1)창조주를 바라봄: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으신 이를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2)우상 숭배의 종식: 자신들의 손가락으로 만든 아세라 상이나 태양상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그 무익함을 깨닫게 된다.

· 하나님을 잊은 번영의 결말(9~11절)

이스라엘이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진 이유는 그들의 영적 망각에 있다.

(1)하나님을 잊음: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피난처이신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2)이방 풍습의 도입: 그들은 하나님 대신 이방의 신들(아도니스 종교 등)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방의 나무 가지를 심는 등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다.

(3)허망한 결과: 아침에 정성껏 씨를 뿌려 발육하도록 노력할지라도, 심판의 날에는 그 수확이 슬픔의 날의 농작물처럼 사라지고 오직 심한 슬픔만이 남게 될 것이다.

· 열방의 소동과 하나님의 심판(12~14절)

이 단락의 마지막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강대국(앗수르 등)의 운명을 다룬다.

(1)성난 바다 같은 열방: 수많은 민족이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처럼 요동하며 몰려오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물거품에 불과하다.

(2)하나님의 권능: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면, 그들은 산 위의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고 폭풍 앞의 티끌같이 멀리 도망하게 된다.

(3)갑작스러운 심판: 저녁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적들이 아침이 오기 전에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는 주전 701년 앗수르 대군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요약하면, 이사야 17장은 하나님을 잊고 세상 권세를 의지했던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의 교만한 영화는 반드시 쇠락하지만,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열방을 꾸짖으시고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기도

제 마음 밭에 무엇을 심고 있는지 살피게 하소서. 능력의 반석이신 주님을 잊고 다른 것으로 안전을 삼으려 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오늘 저를 지으신 이를 다시 바라보게 하소서. 아무리 크고 요란한 위협 앞에서도 한마디로 꾸짖으실 수 있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삶속으로

예전에 메멘토모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온 몸이 문신 투성이었다. 이 문신은 멋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남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를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잊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주인공이 한 일이 무엇이냐면 몸에 새겨 두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중요한 사건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래서 온 몸에 문신투성이인 것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기억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기억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하지 않으면 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몸에 새겨서라도 기억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헌다. 우리의 문제는 망각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베푸신 은헤를 기억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PAvWRRYir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