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2 [약속의 땅, 미완의 정복, 사사기 1:11~21] 양승언 목사

약속의 땅, 미완의 정복

9월 2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사사기 1장 11~21절 

웃니엘과 악사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유다와 베냐민의 명암 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묵상하기

1. 갈렙은 기럇 세벨을 점령하는 자에게 어떤 상급을 약속했으며, 누가 이 제안을 수락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12~15절) 

2. 유다 지파가 산지 주민을 쫓아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반대로 골짜기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현실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19절) 

3. 갈렙이 약속대로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아 거인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낸 사건과, 유다·베냐민 지파가 철 병거와 거센 저항 앞에 적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모습을 대조함으로 주신 교훈은 무엇인가? 

4. 내 삶 속에서 철 병거와 같이 인간적인 두려움이나 세상의 벽에 막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머뭇거리고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갈렙 집안의 신앙적 승리와 유다 및 베냐민 지파의 정복 전쟁 속에 나타난 명암을 대조하며, 이스라엘의 점진적인 불순종과 타협의 전조를 고발한다.

· 웃니엘과 악사(11~15절)

갈렙은 헤브론 정복에 이어 드빌(옛 이름 기럇 세벨)을 정복하고자 하며, 이를 점령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드빌을 쳐서 점령하고 악사를 아내로 맞이한다. 옷니엘은 유다 지파 사람으로, 훗날 사사기 본론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열두 사사 중 첫 번째 사사이자 가장 모범적인 사사의 모델이었다. 악사 역시 가나안 신앙에 물들어 기업을 잃어버리는 다른 이방인들과 대조적으로 이상적인 여인의 모형을 제시한다.

악사는 출가할 때 남편 옷니엘을 재촉하여 친정아버지 갈렙에게 밭을 구하고자 한다. 여기서 재촉하다(자극하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성경에서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저자가 악사의 밭 요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악사는 이내 나귀에서 직접 내려 갈렙에게 네겝(남방)의 메마른 땅을 보완해 줄 샘물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물질적 탐욕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적 정황 속에서 남편과 자신의 미래 기업을 위해 아버지의 축복을 구한 지혜로운 행동이었다. 무례하지 않으면서 공손히 자신의 권리를 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예의범절을 갖춘 여성의 모델로 제시되며, 이는 사사기 후반부(19~21장)에서 극심한 인권 유린과 집단 납치 및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과 매우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갈렙은 기꺼이 윗샘과 아랫샘 두 개를 딸에게 선물한다.

· 유다와 베냐민의 명암(16~21절)

모세의 장인(혹은 처남) 계열인 겐 사람들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에서 올라가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한다. 본래 미디안 사람들의 일부였던 이들은 모세와의 결혼 인연으로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이방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원의 작은 모형이 된다.

유다는 시므온 지파와 연합하여 가나안 사람들의 성읍인 스밧을 쳐서 철저히 진멸(헤렘)한다. 하나님의 진멸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음을 기념하여 이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진멸이라는 뜻)로 고쳐 부르게 된다.

유다 지파는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등 블레셋 평지 성읍들을 정복하고자 시도했으나, 결국 골짜기 주민들이 가진 철 병거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겉으로는 골짜기 주민들의 강력한 무기(철 병거)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타협과 현실적 불순종을 선택한 이스라엘의 신학적·신앙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모세가 명한 대로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얻은 갈렙은, 강력한 거인 아낙의 세 아들(세새, 아히만, 달매)을 기어이 쫓아내는 강력한 믿음의 승리를 거둔다. 반면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패를 겪는다. 결국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거주하게 됨으로써 가나안인들과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된다. 특히 본문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고 기록한 대목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빼앗기 전인 아무리 늦어도 다윗 시대 이전에 본문이 기록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역사적 단서가 된다. 


기도

눈앞의 철 병거와 같은 세상의 장벽에 위축되어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적당히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함께하심을 의지하여 내 삶의 영적 헤브론을 완전히 점령하게 하소서. 


삶속으로

19세기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사역했던 존 패튼이라는 선교사님이 있다. 사실 남태평양의 알려지지 않는 섬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 선교사역을 지속했을까요? 패튼은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패튼의 아버지 제임스는 유명한 목회자나 선교사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였다. 하지만 그의 집에는 아주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침대와 작은 탁자, 의자 정도만 들어가는 방이었는데, 아버지는 매일 그곳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패튼은 훗날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도 모습을 회상하면서, 신앙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잃는다 해도 아버지의 기도방의 기억만으로 의심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MSm8lez8b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