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1 [해가 힘 있게 돋음같이, 사사기 5:19~31] 양승언 목사
해가 힘 있게 돋음같이
9월 11일(금)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사사기 5장 19~31절
므깃도 전쟁의 승리 19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메로스 저주와 야엘 축복 23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24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26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27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헛된 기대 28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29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청원과 평화 31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묵상하기
1. 시스라의 가나안 군대와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어떤 자연현상과 초자연적 역사로 개입하셨으며, 이 승리를 완성한 인물은 누구인가? (19~21절, 24~27절)
2. 시스라의 어머니와 하녀들은 승리를 확신하며 전리품과 잔혹한 전리품을 기대했으나, 실제 하나님이 내리신 결말은 어떠했는가? 이것이 세상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28~31절)
3.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나에게 강력해 보이는 세상의 철병거(시스라의 힘)는 무엇이며, 오늘 야엘과 같이 주님의 편에 서서 용기 있게 결단하고 내던져야 할 무기나 이기심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이야기체인 4장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는 드보라의 노래의 절정이자 결론부다. 시인은 천재지변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역사적 대승을 안겨주신 하나님의 권능을 묘사하고, 전쟁에 협조하지 않은 자들을 향한 저주와 믿음으로 헌신한 이방 여인 야엘의 축복을 극적으로 대조하며 장엄한 승전가를 마무리한다
· 므깃도 전쟁의 승리(19~22절)
시인은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다"고 노래하며 여러 왕들을 등장시킨다. 이는 이 전쟁이 단순히 하솔 왕 야빈과의 싸움이 아니라, 가나안의 모든 이방 민족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거대한 영적 전쟁이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는 기손 강가에서 시작된 전쟁이 므깃도 일대까지 광범위하게 번져 나갔음을 의미한다. 가나안 군인들은 자신들이 손쉽게 이길 것으로 확신하며 전리품을 약탈하는 데만 마음이 쏠려 있었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단 하나의 은도 차지하지 못하고 처참히 패배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고 노래한다. 고대 사회에서는 별들은 비를 내리는 존재로 여겨졌는데, 하나님께서 이 피조물(별들)을 동원하여 예기치 못한 폭우를 쏟아 내셨음을 시적·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평소에는 메말라 있던 와디(건천)인 기손 강이 때아닌 장대비로 범람했고, 이로 인해 온 땅이 질퍽해지면서 시스라가 자랑하던 철 병거 900대의 바퀴가 진흙에 박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는 과거 출애굽 때 홍해 물이 이집트의 병거들을 휩쓸어 갔던 사건을 강력하게 연상시키며, 전쟁의 승패가 무기가 아니라 여호와께 속했음을 웅변한다. 철 병거가 오히려 살기 위해 버려야 할 짐이 되자, 시스라는 병거에서 뛰어내려 걸어서 도망쳤고, 이스라엘 군대의 추격과 살육이 시작되면서 적진은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혼비백산하여 후퇴했다.
· 메로스 저주와 야엘 축복(23~27절)
여호와의 사자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성읍인 메로스와 그 주민들을 향해 "거듭거듭 저주하라"고 선언한다. 메로스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하늘의 별들조차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비를 내리며 싸웠는데, 정작 자신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싸움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메로스 사람들은 언약적 의무를 저버렸기에 혹독한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메로스 성읍과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에게는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라는 극찬과 축복이 쏟아진다. 시인은 매우 생생하고 극적인 시어로 노래한다.
· 헛된 기대(28~30절)
시인은 장면을 완전히 전환하여 시스라의 궁궐을 비춘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이 탄 병거가 왜 이리 늦어지는지 불안해하며 창살 틈으로 밖을 내다본다. 그녀의 지혜로운 시녀들과 스스로가 내놓은 답은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어 나누지 못하였으랴"라는 헛된 확신이었다. 그들은 군사들이 전장에서 전리품을 나누고,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취하여 노략질하느라 늦어지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는 여성들을 단순히 성적 노리개나 약탈물로 취급했던 가나안 전쟁의 잔인한 현실을 고발하는 씁쓸한 기술이다.
적장 시스라의 어머니가 궁궐 안에서 아들이 약탈한 처녀들을 분배하는 승리의 환상에 도취해 있는 동안, 실제 정황에서 그녀의 아들 시스라는 이미 한 여인(야엘)의 발 앞에 고꾸라져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이러한 극적 대조는 대적의 가련한 운명과 불완전한 우상의 무능함을 비웃는 날카로운 풍자와 아이러니의 절정이다. 또한 승리를 자축하는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와 아들의 죽음에 통곡할 '시스라의 어머니'라는 두 여인의 엇갈린 운명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 청원과 평화(31절)
드보라는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라는 장엄한 간구로 노래의 끝을 맺는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대적은 곧 여호와의 대적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주의 원수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남겨두었다. 왜냐하면 사사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원수는 가나안 이방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반면 야엘, 드보라, 바락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주고 생명을 선사하며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될 것을 축복한다. 이 극적인 여인들의 활약과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 사역의 결과로, 이스라엘 땅은 마침내 한 세대를 뜻하는 사십 년 동안 전쟁 없는 참된 평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도
결정적인 자리에서 침묵하고 물러섰던 메로스의 자리를 떠나, 야엘처럼 내 손에 있는 것으로 주님 편에 서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대로 해가 힘 있게 돋음 같은 삶을 살게 하소서.
삶속으로
1886년 캐나다에서 철물점을 경영하던 스물세 살의 청년이 주의 복음을 듣고 영접한 후 뜨겁게 구원의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소그룹에 참여하여 교제하면서 부름 받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던 그에게 1889년 어느 날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을 읽는데 너무나 그 마음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는 내면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그는 늘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흥회에 참석했다. 그 부흥회 강사는 마지막 설교에서 이렇게 도전했다. "사막에 물이 없어 죽어가는 예쁜 유리잔에 물을 따라주면 그는 감사하게 마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예쁜 유리잔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찌그러진 깡통에 담아줄지라도 물만 주면 우리는 그를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다." 이 말이 그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흥회가 끝나고 기도하는 시간에 이렇게 결단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찌그러진 깡통 같은 저라도 하나님이 쓰시기를 원하신다면,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생명수를 담아 사람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그 후 그는 1889년 12월 추운 겨울에 한국 땅에 도착했다. 그가 바로 말콤 펜윅 선교사다. 그는 침례교회에서 한국에 파송한 첫 선교사였고, 그를 통해 우리 나라에도 침례교회가 세워졌고, 지금까지 2,500개가 넘는 침례교회가 한국에 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에게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ZL5rM0iA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