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6 [시련의 끝에서 만나는 빛의 아버지, 야고보서 1:12~18] 양승언 목사

시련의 끝에서 만나는 빛의 아버지

10월 16일(금)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야고보서 1장 12~18절 

시험을 참는 자의 승리 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을 받는 이유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묵상하기

1. 시험을 참고 시련을 견디어 낸 사람은 무엇을 얻게 되는가? 그것은 누구에게 약속된 것인가? (12절)

2.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을 받는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가? 욕심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망에 이르는가? (13~15절)

3.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빛들의 아버지께서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며,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고백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17~18절)

4. 나는 넘어질 때 그 책임을 상황이나 다른 사람, 혹은 하나님께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내 안에서 잉태되어 자라고 있는 욕심은 무엇인가? 그것이 죄로 자라기 전에 오늘 끊어 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앞에서 다룬 시험(시련)의 주제를 이어 가면서, 바깥에서 오는 시련과 안에서 일어나는 유혹을 구분한다. 야고보는 시련을 견디는 자에게 약속된 복을 말한 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유혹의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욕심에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하나님은 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며,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낳으신 분이라고 고백한다.

· 시험을 참는 자의 승리(12절)

‘복이 있나니’는 예수님의 팔복에 쓰인 것과 같은 말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가리킨다. 세상은 시험이 없는 사람을 복되다고 하지만,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한다. 시련을 견디어 낸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여기서 ‘면류관’은 왕의 왕관이 아니라,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의 머리에 씌워 주던 월계관을 말한다. 끝까지 달려간 자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관이다. 이 면류관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되었다. 시련을 견디는 힘은 의지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사랑하는 분을 바라보는 사람은 고난의 시간을 버텨 낼 수 있다.

· 시험을 받는 이유(13~15절)

야고보서에서 ‘시험’은 두 가지 뜻을 함께 가진다. 하나는 믿음을 단련하는 외적인 ‘시련’이고, 다른 하나는 죄로 끌어당기는 내적인 ‘유혹’이다. 같은 사건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시련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유혹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넘어질 때 쉽게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린다. 아담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여자를 탓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여자를 주신 하나님을 탓한 것이다. 야고보는 이런 변명을 단호히 막는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악으로 유혹하지 않으신다. 유혹의 근원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의 ‘욕심’이다. 14절의 ‘끌려’와 ‘미혹됨’은 사냥과 낚시에서 쓰이던 말이다. 짐승이 덫으로 끌려가고, 물고기가 미끼에 꾀여 낚싯바늘을 무는 모습이다. 욕심은 미끼를 보여 주지만 그 안에 숨은 바늘은 보여 주지 않는다. 15절은 이 과정을 출산에 비유한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처음에는 작은 생각과 바람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마음에 머물며 자라면 결국 행동이 되고, 행동이 반복되면 생명을 잃게 만든다. 그러므로 죄는 다 자란 후가 아니라 잉태되기 전에, 생각의 단계에서 끊어 내야 한다.

·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16~18절)

‘속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신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각종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빛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와 달과 별, 곧 하늘의 광명들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뜻이다. 하늘의 빛들은 움직이며 변한다. 해는 뜨고 지며, 달은 차고 기울고, 그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고 길어진다. 그러나 그 빛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내 형편이 바뀌고 마음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바뀌지 않는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될 때, 우리는 이 변함없는 빛을 붙들어야 한다.

15절에서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았다’. 18절에서 야고보는 같은 단어를 다시 쓴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욕심이 낳는 것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이 말씀으로 낳으시는 것은 새 생명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 구약에서 첫 열매는 추수의 맨 처음 거둔 곡식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것이었다. 동시에 앞으로 거두어질 풍성한 추수를 미리 보여 주는 표였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들이며, 장차 온 피조물이 새롭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에 끌려 사망을 낳는 삶이 아니라, 말씀으로 태어난 자답게 생명을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도 

변함없이 좋은 것을 주시는 빛들의 아버지, 넘어질 때마다 상황과 사람과 하나님을 탓하던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내 안에서 자라는 욕심을 바로 보게 하시고, 그것이 죄로 자라기 전에 말씀으로 끊어 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으로 저를 낳으신 은혜를 기억하며, 시련을 견디어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삶속으로 

조니 에릭슨 타다가 소개한 친구의 이야기다. 그레이시라는 여성이 대학교 재학 중 큰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학교는 그녀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대학 건물 앞에 장애인 주차 표지판을 세워 주었다.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레이시는 다시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용하던 주차 표지판 위에 새로운 단어가 붙어 있었다. ‘방문자’, 영어로 ‘비지터’라는 단어였다. 그레이시는 그 단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조니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에 잠시 방문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고난 속에 영원히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문자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방문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그곳이 영원한 거처는 아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집이 있다. 물론 지금 겪는 고난은 실제입니다. 몸이 아프면 고통스럽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가슴이 무너진다. 어떤 고난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어떤 아픔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쉽게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그 고난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은 연약한 몸으로 탄식하지만, 장차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은 눈물을 흘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고통이 영원히 우리를 붙잡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의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그 영광은 단지 고통이 멈추는 정도가 아니다. 온전히 회복된 몸으로, 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영광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고난이 우리 삶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고난을 지나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광이다. 이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 더 걸어가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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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i13Yi9Bt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