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9 [행함으로 호흡하는 믿음, 야고보서 2:14~26] 양승언 목사
행함으로 호흡하는 믿음
10월 19일(월)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야고보서 2장 14~26절
행함 없는 믿음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아브라함과 라합의 참 믿음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묵상하기
1.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예를 가지고 이를 설명하고 있는가?(14~17절)
2. 야고보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를 통해 참된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19~25절)
3.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22, 26절)
4. 나의 믿음은 말과 고백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내 주변에서 ‘평안히 가라’는 말이 아니라 ‘몸에 쓸 것’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 내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야고보서의 중심 주제인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다루는 부분이다. 앞에서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했고,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이제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행함이 없는 믿음도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야고보의 대답은 분명하다.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드러난다.
· 행함 없는 믿음(14~20절)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묻는다. 여기서 ‘있노라 하고’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야고보는 참된 믿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묻는데, 헬라어 원문은 ‘그런 믿음’, 곧 행함이 없는 바로 그 믿음을 가리킨다. 야고보는 구체적인 예를 든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 곧 하루 먹을 것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누군가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한다. ‘평안히 가라’는 당시 유대인들이 헤어질 때 하던 인사말이다. 겉으로는 따뜻한 축복처럼 들리지만, 정작 몸에 쓸 것은 하나도 주지 않는다. 추운 사람에게 ‘따뜻하게 지내라’고 말만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야고보는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행함이 없다는 것 자체가 그 믿음이 이미 죽어 있다는 증거라는 뜻이다.
야고보는 가상의 반론자를 등장시킨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 다른 은사이니 어떤 사람은 믿음을, 어떤 사람은 행함을 가지면 된다는 주장이다. 야고보는 이에 대해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너에게 보이리라’고 답한다. 믿음은 마음속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나며, 행함은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게 하는 창이다. 이어서 야고보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매일 고백하던 쉐마, 곧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라는 신앙고백이다. 야고보는‘잘하는도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덧붙인다. 복음서에서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았고 두려워 떨었다(막 1:24, 5: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순종하지 않았다. 바른 교리를 아는 것과 그 진리에 삶을 맡기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귀신도 가질 수 있지만, 순종으로 이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야고보는 ‘허탄한 사람아’, 곧 ‘속이 텅 빈 사람아’라고 부르며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 곧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임을 깨우친다.
· 아브라함과 라합의 참 믿음(21~26절)
야고보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친 사건(창 22장)은 그의 믿음이 진짜였음을 보여 준 결정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은 창세기 15장 6절로, 이삭을 바치기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야고보는 그 말씀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즉 처음에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랜 순종의 여정을 거쳐 행함으로 열매를 맺고 증명된 것이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처럼, 믿음과 행함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대하 20:7, 사 41:8)이라 불렸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는 말씀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는 바울의 말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유대주의자들에 맞서, 구원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임을 강조했다. 반면 야고보는 믿는다고 말하면서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에 맞서, 구원받은 믿음의 ‘증거’가 행함임을 강조했다. 바울이 말하는 ‘행위’는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의 행위이고,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순종의 열매다. 바울 역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고 말했다.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행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두 번째 예로 기생 라합을 든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조상이었다면, 라합은 이방 여인이자 멸시받던 기생이었다. 그녀는 여리고를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 주고 다른 길로 피하게 했다(수 2장). 라합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고 고백했고, 이 믿음을 목숨을 건 행동으로 보였다. 그 결과 라합과 그의 가족은 여리고가 무너질 때 구원받았으며, 그녀는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마 1:5). 신분이 높든 낮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참된 믿음은 똑같이 행함으로 드러난다.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로 결론을 맺는다. 숨이 끊어진 몸은 겉모습이 그대로 있어도 죽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겉으로는 믿음의 모양을 갖추고 있어도 생명이 없는 죽은 믿음이다. 살아 있는 몸이 숨을 쉬듯, 살아 있는 믿음은 행함으로 숨 쉰다.
기도
입술로만 믿음을 고백하고 행함이 없었던 저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믿음이 지식에 머물지 않고 순종과 사랑의 행함으로 열매 맺게 하소서.
삶속으로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1937년 『나를 따르라』에서 당시 교회를 향해 ‘값싼 은혜’를 경고했다. 그는 값싼 은혜를 “회개 없는 용서, 교회의 치리 없는 세례, 죄의 고백 없는 성만찬”이며 “제자도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라고 불렀다.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삶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신앙, 곧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적한 것이다.
본회퍼는 이 말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1939년 6월, 나치의 압박이 거세지자 미국의 친구들은 그를 뉴욕으로 초청했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그는 한 달여 만에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며 라인홀드 니버에게 이렇게 썼다.
“이 시대의 시련을 내 민족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나는 전쟁 후 독일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귀국 후 나치에 저항하다가 1943년 체포되었고, 전쟁이 끝나기 한 달 전인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그의 믿음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순종이었다.
믿음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삶으로 나타나야 함을 기억하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갖기를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18-vcspY2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