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작지만 강력한 혀, 야고보서 3:1~12] 양승언 목사

작지만 강력한 혀

10월 20일(화)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야고보서 3장 1~12절 

지도자의 엄중한 책임과 말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작지만 영향력이 큰 혀 3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길들일 수 없는 혀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모순된 언어 사용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묵상하기

1. 야고보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1~2절)

2. 야고보는 혀를 무엇에 비유하고 있는가? 이 비유를 통해 주고자 하는 혀의 특성은 무엇인가?(3~8절)

3.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저주한다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9~12절)

4. 최근 나의 말이 작은 불씨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공동체에 불을 지른 적은 없는가? 오늘 내가 고쳐야 할 언어의 습관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말’에 대한 야고보서의 가장 긴 가르침이다. 야고보는 이미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1:19),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1:26)고 말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는데(2:14~26), 믿음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드러나는 자리가 바로 우리의 혀임을 보여 준다.

· 지도자의 엄중한 책임과 말(1~2절)

야고보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권면한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는 존경받는 자리였고, 초대 교회에서도 가르치는 일은 귀한 은사로 여겨졌다(행 13:1, 엡 4:11). 그러다 보니 자격이 없으면서도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야고보는 ‘선생 된 우리’라고 하며 자신도 포함시킨다. 가르치는 사람은 말로 일하는 사람이며, 많이 말할수록 실수도 많아진다. 또한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살지 못하면 그만큼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님도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라고 말씀하셨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고 인정한다. ‘실수하다’는 말은 ‘걸려 넘어지다’는 뜻이다. 그리고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말은 우리가 가장 쉽게, 가장 자주 넘어지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온 몸, 곧 삶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다. ‘굴레’는 말을 부리기 위해 머리에 씌우는 마구다. 혀를 다스리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 작지만 영향력이 큰 혀(3~6절)

야고보는 두 가지 그림을 보여 준다. 하나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다. 작은 쇠붙이 하나로 거대한 말의 온 몸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다른 하나는 배의 ‘키’다. 광풍에 밀려가는 큰 배도 지극히 작은 키 하나로 사공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 혀도 몸에서 아주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큰 것을 자랑한다’는 말은 혀가 실제로 큰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한마디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한마디 말이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잠언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잠 18:21)라고 말한다.

야고보는 혀를 ‘불’에 비유한다.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에서 ‘나무’는 숲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건조한 기후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는 일은 흔했다. 말도 그렇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소문이 되고, 오해가 되어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를 태운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는 말은 혀 안에 세상의 온갖 악이 다 담겨 있다는 뜻이다. 거짓말, 험담, 비방, 아첨, 자랑, 저주가 모두 혀에서 나온다. 혀는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 곧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 전체를 불사른다. 그리고 그 불은 ‘지옥 불’에서 나온다. 여기서 ‘지옥’은 ‘게헨나’로, 예루살렘 남쪽 힌놈의 골짜기에서 온 말이다. 이곳은 한때 우상에게 자녀를 불살라 바치던 곳이었고(렘 7:31), 훗날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꺼지지 않던 곳이었다. 파괴적인 말의 근원은 사탄에게 있다는 것이다.

· 길들일 수 없는 혀(7~8절)

야고보는 사람이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 생물을 다 길들여 왔지만,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지만(창 1:28), 정작 사람은 자기 혀 하나를 다스리지 못한다.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 곧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움직이는 악이며, 뱀의 독처럼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시 140:3). 사람의 힘으로는 혀를 길들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령의 다스림이 필요하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라고 기도했다.

· 모순된 언어 사용(9~12절)

야고보는 혀의 모순을 지적한다. 같은 혀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같은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찬송받으실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입으로 사람을 저주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에(창 1:26~27),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결국 그 형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주일에 찬양하던 입으로 월요일에 동료를 험담하고, 기도하던 입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찬송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야고보는 자연에서 세 가지 예를 든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나올 수 없다.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다. 짠 물이 단 물을 낼 수 없다. 샘의 물은 그 근원을 드러내고, 나무의 열매는 그 나무의 본질을 드러낸다. 예수님도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고 말씀하셨다. 결국 말의 문제는 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혀를 바꾸려면 먼저 마음의 샘이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이 새로워질 때, 우리의 입에서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엡 4:29)이 흘러나오게 된다. 


기도 

하나님의 형상인 이웃을 판단하고 상처 주었던 저를 용서 하시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혀를 길들이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어느 시골의 작은 성당에는 잡일을 하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실수로 성찬식 때 쓸 포도주를 땅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를 본 신부는 그를 혼내면서 다시는 성당 일 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내쫓았다. 훗날 이 아이는 장성해서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어렸을 때 성당을 섬겼던 그 아이는 이제 공산주의자가 되어서 기독교를 탄압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이었다. 어쩌면 그 때 신부님이 던진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를 깨닫고, 말로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vApsaytph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