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2 [세상의 벗, 하나님의 벗, 야고보서 4:1~12] 양승언 목사
세상의 벗, 하나님의 벗
10월 22일(목)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야고보서 4장 1~12절
정욕의 폐해 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세상의 벗은 하나님의 원수 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세속화와 교만에서 벗어나는 길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형제 비방 금지 11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묵상하기
1. 야고보는 성도들 사이의 싸움과 다툼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말하는가? 그들이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3절)
2. 야고보는 세상과 벗이 되려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권면하는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약속하시는가? (7~10절)
3.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10절)
4. 지금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욕심은 무엇이며, 그것이 나의 관계 속에 어떤 다툼을 만들고 있는가? 오늘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3장 끝에서 말한 ‘시기와 다툼’(3:14~16)과 ‘화평’(3:18)의 주제를 이어 간다. 야고보는 공동체 안의 싸움과 다툼의 근본 원인이 사람의 마음속 욕심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사람을 고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데 있다고 말한다.
· 정욕의 폐해(1~3절)
야고보는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고 묻는다. ‘싸움’은 전쟁처럼 오래 이어지는 갈등을, ‘다툼’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개별적인 충돌을 가리킨다. 그 근원은 바로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이다. ‘정욕’은 쾌락이나 자기 만족을 향한 욕망을 뜻한다. 우리는 흔히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지만, 야고보는 그 뿌리가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욕망이 우리 안에서 군대처럼 진을 치고 싸우고 있다고 표현한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라는 말은 실제 살인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형제를 향한 미움과 분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마 5:21~22, 요일3:15). 욕심은 채워지지 않으면 시기가 되고, 시기는 다툼과 싸움이 된다. 야고보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구하더라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기도마저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참된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요일 5:14).
· 세상의 벗은 하나님의 원수(4~6절)
야고보는 갑자기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강하게 부른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표현되었고,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영적 간음’으로 불렸다(렘 3:20, 호 2장).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세상의 가치를 사랑하는 것은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가치 체계를 말한다. 요한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고 말했다.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둘 사이에 중립은 없다.
5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지만,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투하실 만큼 사랑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출 20:5, 34:14)이시다. 이 질투는 사람의 시기와 달리, 사랑하는 자를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거룩한 사랑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 우리의 욕심과 배신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 그 은혜는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야고보는 잠언 3장 34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한다. 은혜를 받는 길은 겸손이다.
· 세속화와 교만에서 벗어나는 길(7~10절)
야고보는 열 개의 명령으로 구체적인 처방을 내린다. 먼저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복종은 군대에서 지휘관 아래 자신을 두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은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때 마귀는 우리를 피한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마 4:1~11).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이는 놀라운 약속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누구든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히 10:19~22).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올 때 아버지는 멀리서 보고 달려와 그를 안았다(눅 15:20). 우리가 한 걸음 나아가면 하나님은 달려오신다. ‘손을 깨끗이 하라’는 행동의 죄를,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는 내면의 죄를 씻으라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1장 8절에서 말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이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는 슬픔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는 말이다. 죄를 가볍게 여기며 웃고 즐기던 삶에서 돌이켜 죄를 슬퍼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스스로 높아지려는 욕심이 다툼을 만든다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겸손은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은혜를 가져온다(벧전 5:6).
· 형제 비방 금지(11~12절)
야고보는 다시 공동체 안의 관계로 돌아온다. ‘서로 비방하지 말라’. ‘비방하다’는 상대가 없는 곳에서 그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2:8)는 최고의 법을 무시하고, 마치 자신이 그 법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스스로 ‘재판관’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그러나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 곧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만이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신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교만에 대한 마지막 경고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교만이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사람은 이웃을 판단하지 않고 긍휼히 여긴다(2:13).
기도
욕심에 이끌려 다투고 시기하며 세상과 벗하려 했던 저를 용서해 주시고, 두 마음을 버리고 주님 앞에 낮아지게 하시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삶속으로
1855년, 젊은 변호사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 특허 소송(매코믹 대 매니 사건)의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그러나 오하이오에서 온 유명 변호사 에드윈 스탠턴은 시골뜨기 같은 링컨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그는 링컨을 회의에서 따돌렸고, 링컨이 정성껏 준비한 변론서는 펼쳐 보지도 않았다. 링컨은 깊은 모욕을 느꼈다.
그런데 7년 뒤 대통령이 된 링컨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1월, 바로 그 스탠턴을 전쟁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링컨은 개인적인 감정보다 나라에 필요한 그의 능력과 정직함을 보았던 것이다. 스탠턴은 처음에는 링컨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점차 대통령의 가장 충실한 동료가 되었다. 1865년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스탠턴은 그의 곁을 지키며 “이제 그는 역사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링컨은 자신을 무시한 사람에게 복수하는 대신 화평을 심었고, 그 화평은 나라를 하나로 지키는 열매를 맺었다. 날마다 삶 가운데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 화평의 열매를 맛보게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fySOn-FE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