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나의 행복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시편 16:1~11] 양승언 목사

나의 행복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10월 26일(월)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시편 16편 1~11절

[다윗의 믹담]

나의 피난처이신 하나님 1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기업이신 하나님 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기쁨이신 하나님 9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묵상하기

1. 다윗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또한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가? (1~4절)

2.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무엇이라고 고백하는가? 여호와를 항상 앞에 모신 다윗은 어떤 삶을 누린다고 말하는가? (5~11절)

3.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다윗의 고백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나는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인가? 복 되신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동행하기 위해 실천할 일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다윗이 피난처 되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고백하는 시다. 표제의 ‘믹담’은 뜻이 분명하지 않지만, ‘금과 같은 시’ 혹은 ‘새겨 둔 글’이라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만큼 오래 마음에 새겨 둘 만한 고백이라는 뜻이다. 이 시는 간구로 시작하지만(1절) 확신과 기쁨으로 마무리되며(11절),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인용된다(행 2:25~31, 13:35).

· 나의 피난처이신 하나님(1~4절)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기도한다. ‘피하다’는 폭풍이나 적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숨는 것을 뜻한다. 어떤 위험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다윗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로 달려간다. 그리고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한다. ‘주님’은 주인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시며 그분 외에는 참된 복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도 사랑한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들을 ‘존귀한 자들’이라 부르며 그들 안에서 즐거움을 누린다. 반면 다른 신을 따르는 자들은 ‘괴로움이 더할 것’이다. ‘피의 전제’는 당시 가나안 이방 종교의 제사 의식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더 많은 복을 얻으려고 다른 신을 찾지만, 결국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다윗은 그들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그 신들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나의 기업이신 하나님(5~8절)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산업’과 ‘분깃’은 나누어 받은 몫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각 지파는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었고, 측량하는 줄로 그 경계를 정했다. 그런데 레위 지파는 땅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표현을 빌려 땅이나 재물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나의 몫이라고 고백한다. 

‘잔’은 주인이 손님에게 채워 주는 몫을 상징한다. 그래서 다윗은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노래한다. 다윗의 인생은 늘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몫이 되시니, 하나님이 정해 주신 삶의 자리가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만족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누구를 가졌느냐에서 온다.

다윗은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한다. ‘훈계하다’는 조언하고 이끌어 준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밤에도 다윗을 가르치셨다. ‘양심’으로 번역된 말은 원래 ‘콩팥’을 가리키며, 사람의 가장 깊은 속마음을 뜻한다. 다윗은 조용한 밤에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항상 내 앞에 모신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오른쪽’은 보호자와 변호자가 서는 자리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 곁을 지키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상황이 흔들려도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 나의 기쁨이신 하나님(9~11절)

하나님을 모신 다윗의 마음은 기쁘고, 영은 즐거우며, 육체도 안전하다.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 되실 때 마음과 영혼과 몸, 곧 존재 전체가 평안을 누린다. 다윗은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며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으나, 이 말씀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고 한 것이라고 선포했다(행 2:29~31). 바울도 같은 말씀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다(행 13:35~37). 다윗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같은 소망이 된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노래한다. 세상의 즐거움은 잠시 채워지다 사라지지만, 주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주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2절)로 시작한 고백은 “주의 앞에 충만한 기쁨이 있다”(11절)는 고백으로 완성된다.


기도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음을 고백하오니, 주님만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흔들림 없이 생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삶속으로 

예쁜 포장지에 싸여 있는 선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라. 포장지가 너무 이뻐서 뜯지 않고 포장한 채로 그대로 둔다면 어떨까? 지혜로운 행동일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포장지가 아니라 선물 자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비싼 핸드폰을 자녀에게 선물해 주었다고 가정해 보라. 선물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람을 위해서 준 것이며, 동시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 준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핸드폰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핸드폰에만 빠져 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우리에 주신다. 건강도 주시고, 재물도 주시고 성공도 주신다. 그런데 이 선물에 속아 선물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분 자체가 복이기 때문이다. 주밖에는 복이 없다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LWL-KWizK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