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시편 18:16~29] 양승언 목사

내가 주를 의뢰하고

10월 29일(목)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의 구원 16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7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18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19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의로운 삶과 하나님의 보상 20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21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2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신실하신 하나님 25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27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28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묵상하기

1. 하나님은 재앙의 날에 다윗을 어떻게 건지셨으며, 다윗을 어디로 인도하셨는가? 하나님이 다윗을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6~19절)

2.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시는가?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가? (25~29절)

3.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신다는 다윗의 고백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나는 얼마나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신(7~15절) 이후, 실제로 다윗을 어떻게 건지셨는지를 노래한다. 앞부분이 우주를 뒤흔드는 하나님의 강림을 그렸다면, 이제 그 크신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한 사람을 붙잡아 주시는 장면으로 초점이 옮겨 간다.

· 하나님의 구원(16~19절)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많은 물’은 앞에서 말한 ‘불의의 창수’(4절)처럼 사람을 집어삼키는 위험과 혼돈을 상징한다. ‘건져내다’는 말은 모세의 이름에 쓰인 말과 같은 말이다. 바로의 딸은 나일 강에서 아기를 건져내고 그 이름을 ‘모세’라 지었다(출 2:10). 물에서 건져진 모세처럼, 다윗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 죽음의 물에서 건져졌다. 다윗은 원수들이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원수들은 ‘나의 재앙의 날’, 곧 가장 약하고 무너져 있을 때를 노려 덮쳤다. 그러나 그날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다’. ‘의지’는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는 지팡이를 뜻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을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사망의 줄에 얽히고 원수에게 에워싸여 숨 막히던 좁은 곳에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넓은 곳으로 옮기신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구원하신 이유는 “나를 기뻐하시므로”다. 다윗이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구원의 출발점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다.

· 의로운 삶과 하나님의 보상(20~24절)

그런데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의를 따라’,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다고 말한다. 자칫 다윗이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죄 없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삼상 24:6, 26:11)이라며 손을 대지 않았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악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의 도를 지킨 것이다. ‘완전하다’는 말도 흠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온전하다는 뜻이다. 19절의 은혜와 20~24절의 순종은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지키며 산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신실한 삶을 기억하시고 갚아 주신다. 다윗은 그 사실을 인생의 끝에서 돌아보며 고백하고 있다.

· 신실하신 하나님(25~29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노래한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자비로, 완전한 자에게는 완전함으로, 깨끗한 자에게는 깨끗함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신다’. ‘사악하다’는 말은 비뚤어지고 꼬였다는 뜻이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을 가로막는 분으로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신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높이시고, 스스로 높아진 사람은 낮추신다. 이것이 마리아의 노래에서도 반복되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다(눅 1:51~53).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집에서는 밤에도 작은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그 집안이 끊어지는 것을 뜻했다(잠 13:9). 하나님은 다윗의 꺼져 가는 등불을 다시 켜시고, 그의 흑암을 밝히셨다. 훗날 하나님은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왕상 11:36), 그 약속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요 8:12). 하나님이 밝혀 주신 빛 속에서 다윗은 담대해진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원수를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이 이제는 적군을 향해 달려간다. 높은 성벽도 뛰어넘는다. 그 힘은 다윗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를 의뢰하고’, ‘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어진 힘이다. 지금 나를 덮치고 있는 ‘많은 물’과 ‘흑암’은 무엇인가? 그 속에서도 나는 주님의 도를 지키며 깨끗한 손으로 살고 있는가? 오늘 주님을 의지하여 뛰어넘어야 할 ‘담’은 무엇인가?


기도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나의 흑암을 밝히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오늘 내 앞의 담을 담대히 뛰어넘게 하소서.


삶속으로 

제주도에 가면 유명한 돈가스집이 있다. 사람들이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텐트를 돈 받고 빌려주기까지 한다. 2만원짜리 돈가스 먹으려고 몇 시간씩 텐트까지 빌려서 먹는 것이다. 후배가 먹고 왔길래, 맛있냐 물었다. 치즈돈가스가 맛있는데, 치즈가 다르다고 답했다. 그렇게 기다려서 먹으면 맛이엤지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자세로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음식 맛도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마음 자세에 따라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달라진다. 나는 얼마나 기대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5RKH3FLeN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