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4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3:1~18] 양승언 목사

그리스도의 편지

11월 4일(수)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고린도후서 3장 1~18절 

그리스도의 편지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새 언약의 일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주의 영으로 인한 자유와 변화 12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묵상하기

1. 바울은 자신에게 추천서가 필요 없다고 말하며 고린도 성도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그 편지는 무엇으로, 어디에 쓴 것인가? (1~3절)

2. 바울은 옛 언약의 직분과 새 언약의 직분을 어떻게 비교하는가? 모세의 얼굴을 덮었던 수건은 어떻게 벗겨진다고 말하는가? (6~16절)

3.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당신은 오늘 흘린 땀과 눈물을 하나님께서 다 거두게 하실 것임을 믿는가? 오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내가 변화되어야 할 모습과 행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깎아내리던 사람들에게 답하며, 새 언약의 일꾼이 가진 영광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다른 곳에서 추천서를 들고 와서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바울에게는 그런 추천서가 없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11:4~5). 바울은 종이에 쓴 추천서 대신 성령으로 변화된 성도들의 삶을 가리키고, 돌판에 새긴 옛 언약과 마음에 새긴 새 언약을 대조하며, 모세의 얼굴에 비쳤던 영광보다 더 큰 영광, 곧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가 변화되어 가는 영광을 노래한다.

· 그리스도의 편지(1~3절)

고대 사회에서 낯선 곳을 찾아가는 사람은 자신을 보증하는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곤 했다. 초대교회도 순회 교사나 전도자를 서로 소개할 때 추천서를 사용했다(행 18:27). 그런데 고린도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화려한 추천서를 내세우며 자신을 높였고, 추천서 없이 고린도에 와서 교회를 세운 바울을 의심했다. 바울은 앞에서 자신이 순전함으로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2:17). 그것이 또다시 자기 자랑처럼 들릴까 봐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고 묻는다. 바울은 자신에게 추천서가 필요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고린도 교회 자체가 바울의 사역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추천서라는 것이다. 우상과 음란이 가득한 도시에서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 편지는 바울의 마음에 새겨져 있고, 동시에 “뭇 사람이 알고 읽는” 공개된 편지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부른다. 편지를 쓰신 분은 그리스도시고, 바울은 그 편지를 전달한 사람일 뿐이다. 이 편지는 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돌판이 아니라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새 언약을 맺으실 때 율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시고(렘 31:33),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겔 36:26)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 새 언약의 일꾼(4~11절)

바울은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지만, 그 확신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가진 것이다. 2장 16절에서 바울은“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탄식했다. 여기서 ‘만족하다’로 번역된 말은 바로 그 ‘감당하다’와 같은 단어로, ‘자격이 있다,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일을 감당할 자격은 우리에게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충분하게 하셨다. 바울은 새 언약을 “율법 조문”이 아니라 “영”으로 설명한다. ‘율법 조문’은 ‘문자, 기록된 글자’를 뜻한다. 바울이 율법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롬 7:12). 문제는 돌판에 새긴 계명이 무엇이 옳은지는 알려 주지만, 그것을 지킬 능력은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여 결국 “죽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성령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시는 “살리는” 분이다.

· 주의 영으로 인한 자유와 변화(12~18절)

바울은 출애굽기 34장의 사건을 떠올린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했다(출 34:29~30). 옛 언약에도 그만큼 큰 영광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영광을 “없어질 영광”이라고 부른다. 모세의 얼굴빛이 점점 사라졌던 것처럼, 옛 언약의 영광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바울은 ‘하물며’의 논리로 세 번 비교한다. 죽게 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살리는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다. 정죄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롭다 하시는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친다. 없어질 것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영원히 있을 것은 더욱 영광스럽다. 해가 뜨면 등불의 빛이 더 이상 빛나 보이지 않듯,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 언약의 영광 앞에서 옛 언약의 영광은 빛을 잃는다. 바울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사역이 사실은 모세의 사역보다 더 큰 영광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 소망이 있기에 “담대히” 말한다. 그리고 다시 모세를 떠올린다. 모세는 백성에게 말할 때 얼굴에 수건을 썼다가,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는 수건을 벗었다(출 34:33~35). 바울은 그 수건을, 사라져 가는 영광의 끝을 이스라엘이 보지 못하게 가린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수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회당에서 모세의 글, 곧 옛 언약을 읽을 때에도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수건이 덮여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만 성경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 그 수건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진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수건을 벗었던 것처럼, 누구든지 주님께로 돌이키면 마음을 가린 수건이 벗겨진다. 그리고 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 선언한다. 성령께서는 정죄와 두려움에서, 그리고 율법 조문의 속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마지막 18절은 오늘 본문의 절정이다. 옛 언약에서는 모세 한 사람만 수건을 벗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지만, 새 언약에서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본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이’는 거울로 비추어 보듯 바라본다는 뜻으로, 거울이 빛을 받아 반사하듯 주의 영광을 비춘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게 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한다. ‘변화하다’는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때(마 17:2), 그리고 바울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12:2)고 할 때 쓰인 바로 그 단어다. 게다가 현재형으로 쓰여, 지금도 계속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 번에 완성되는 변화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변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루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의 영”이시다. 


기도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하시며,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도록 변화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1956년 에콰도르의 식인종 부족이었던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던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젊은 선교사가 순교했다. 당시 세상 언론은 "이 무슨 헛된 낭비인가"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동료 아내들은 어린 자녀를 안고 다시 그 부족을 찾아가 사랑으로 섬겼다. 변화될 것 같지 않았던 잔혹한 부족원들의 마음이, 성령께서 아내들의 삶을 통해 녹아 내렸다. 결국 남편을 죽였던 빗장 족장은 목사가 되었고, 그 부족 전체가 하나님을 믿는 온순한 공동체로 변화되었다. 우리의 눈물과 땀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의 수고는 당장 열매 맺지 못해도 결국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편지가 될 것이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래 YouTube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e3aUW5gfcO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