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5 [질그릇이 깨져야 보배는 빛난다, 고린도후서 4:1~18] 양승언 목사

질그릇이 깨져야 보배는 빛난다

11월 5일(목) 매일성경 큐티 _ 양승언 목사

고린도후서 4장 1~18절 

영광을 아는 빛 1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보배가 담긴 질그릇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잠깐의 환난과 영원한 영광 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묵상하기

1.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전파한다고 말하는가?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어떤 빛을 비추셨는가? (5~6절)

2. 바울은 보배를 질그릇에 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는 어떤 환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고백하는가? (7~12절)

3.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바울의 고백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당신은 질그릇 같은 내 삶 속에 보배가 담겨 있다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인가? 오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주목하기 위해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3장에서 말한 새 언약의 영광스러운 직분을 이어받아, 그 영광이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는지를 보여 준다. 고린도 교회의 반대자들은 바울의 초라한 외모와 끊이지 않는 고난을 보며 그가 참된 사도가 아니라고 비난했다(10:10).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본문은 “낙심하지 아니하고”(1절)로 시작해 “낙심하지 아니하노니”(16절)로 마무리되며, 바울이 어떻게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 영광을 아는 빛(1~6절)

바울은 자신이 받은 직분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딤전 1:13). 그래서 그는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하다’는 지쳐서 포기하고 손을 놓아 버린다는 뜻이다. 직분이 자신의 능력에서 나왔다면 실패 앞에서 무너졌겠지만,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왔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바울은 반대자들과 달리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 곧 교활한 술수를 쓰지 않으며, 말씀을 자기 이익을 위해 왜곡하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추천서 대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각 사람의 양심 앞에 자신을 내보인다. 그런데도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신”, 곧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을 전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을 위하여 성도들의 “종”이라고 말한다. 전하는 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가리키는 종이다. 6절에서 바울은 천지창조를 떠올린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셨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하늘로부터 비친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행 9:3).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원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창조다.

· 보배가 담긴 질그릇(7~15절)

바울은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보배”라고 부르고, 그것을 담고 있는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부른다. 질그릇은 흙으로 빚어 구운 값싼 토기로, 쉽게 깨지고 금이 가는 그릇이다. 고대에는 귀중한 물건을 오히려 평범한 토기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기도 했다. 1947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도 토기 항아리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릇은 볼품없어도 그 안에 담긴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다. 하나님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으신 이유는 분명하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강해서 복음이 전해진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겠지만, 깨지기 쉬운 그릇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바울은 질그릇 같은 자신의 삶을 네 쌍의 대조로 설명한다. 사방으로 욱여쌈, 곧 압박을 당해도 꼼짝 못 하게 갇히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원문에서 이 두 단어는 같은 어근을 쓴 언어유희로, ‘길이 막힌 것 같으나 완전히 길을 잃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박해를 받아도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곧 쓰러뜨려져도 끝장나지 않는다. 질그릇은 금이 가고 부딪히지만 깨져 버리지 않는다.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번역된 말은 죽어 가는 과정을 뜻한다. 바울의 몸에는 복음을 위해 당한 매질과 고난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6:4~5; 11:23~27). 그러나 그 죽어 감의 자리에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 바울의 고난을 통해 고린도 성도들 안에서 생명이 역사한다. 십자가의 길이 부활의 생명으로 이어지듯, 바울의 삶에도 죽음과 생명이 함께 역사하고 있었다.

바울은 시편 116편 10절을 인용한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건짐을 받은 후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리라”고 고백했다. 바울도 같은 믿음의 마음으로 말한다. 그 믿음의 내용은 분명하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셔서,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그분 앞에 서게 하실 것이다. 부활의 확신이 있기에 바울은 고난 중에도 침묵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성도들을 위한 것이며, 은혜를 받은 많은 사람의 감사가 넘쳐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하려는 것이다.

· 잠깐의 환난과 영원한 영광(16~18절)

바울은 다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라고 고백한다. 그는 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고난과 세월 속에서 몸은 약해지고 늙어 간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성령께서 우리 내면을 날마다 새롭게 하신다. 겉사람은 쇠해 가지만 속사람은 자라 간다. 바울은 두 저울을 비교한다. 한쪽에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있고, 다른 쪽에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있다. 바울이 겪은 환난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11:23~27). 그러나 영원한 영광과 비교하면 그것은 잠깐이고 가볍다. 히브리어에서 ‘영광(카보드)’은 본래 ‘무거움’을 뜻하는 말이다. 바울은 영광의 무게가 환난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고 말한다(롬 8:18). 그리고 환난이 그 영광을 “이루게” 한다. 고난은 헛되이 흘러가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빚어 간다. 그래서 바울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한다. ‘주목하다’는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바라본다는 뜻이다. 보이는 고난과 연약함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은 영원하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낙심과 소망을 가른다.  


기도 

쉬운 질그릇 같은 제 안에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아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 알며,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주목하며 오늘을 살게 하소서. 


삶속으로 

어느 수필가의 글이다. 이 수필가는 어렸을 때 가난했고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데 월급 날이면 아버지가 항상 고기를 사 오셨다. 시장에서 사 오셨는데, 고기는 신문지에 싸여져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신문지에 싼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날이면 그렇게 반가웠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릇이 아니라 내용이다. 그릇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값진 보화를 담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소중한 그릇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자신의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자신 안에 담긴 보화를, 그리스도를 자랑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해 본다.


아침묵상 영상으로 이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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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U0eF-XOwog